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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칠백의총 공식 관광정보


+7칠백의총은 충남 금산군 소재지 북쪽에 위치한 묘지이다. 임진왜란 발발 직후인 1592년(선조 25) 8월에 조헌과 영규대사의 지휘 아래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의병 700인의 묘이다. 조헌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은 4일 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다. 그 후 1603년(선조 36)에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를 세우고 1647년(인조 25) 사당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시설을 파괴한 후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황폐하게 만들어, 항일유적을 말살하였다. 광복 후 1952년에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사당을 다시 지었고 1970년에 묘역을 확장한 후 사당과 비석을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기념관을 신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일부 유물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매년 9월 23일 15시에 제향 행사를 거행한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2 기준- 휴무
- 매주 월요일
- 지정일
- 1963.01.21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임진왜란(1592) 때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700명의 병사들을 위한 무덤과 사당이다. 조헌(1544∼1592)은 의병장으로, 문과에 급제한 후 호조좌랑, 예조좌랑, 감찰을 거쳐 보은현감으로 나갔으나, 여러 번 재등용되었는데 사직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1,700여 명의 의병을 일으켜 영규대사와 합세하여 청주를 탈환하였다. 이어 금산에서 왜군을 막기 위해 남은 군사 700명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그들이 전사한 후 조헌 선생의 제자인 박정량과 전승업이 시체를 거두어 무덤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칠백의총이다. 조선 선조 36년(1603)에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가 세워지고, 인조 25년(1647)에 종용사를 세워 700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의총을 허물고 순의비를 폭파했으나, 금산군 사람들이 비석 조각을 감추어 보존하였다. 1971년 깨어진 조각을 시멘트 등으로 다시 붙여 복원하였으나, 2009년 석재로 재차 복원하고 비각도 새롭게 건립하였다.1963년 국가에서는 묘역을 확장하고 1976년에 기념관·순의탑을 새로 지었다. <br/><b>※(칠백의총 → 금산 칠백의총)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수량
- 177,595㎡
- 영업시간
- - 하절기(3월~10월) 09:00~18:00 - 동절기(11월~2월) 09:00~17:00
- 주차
- 가능
- 전화
- 041-753-8701~3
- 수용 인원
- 수용 4,6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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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 금산군 · 관광지
금산 칠백의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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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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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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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 유산 소개
- 임진왜란(1592) 때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700명의 병사들을 위한 무덤과 사당이다. 조헌(1544∼1592)은 의병장으로, 문과에 급제한 후 호조좌랑, 예조좌랑, 감찰을 거쳐 보은현감으로 나갔으나, 여러 번 재등용되었는데 사직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1,700여 명의 의병을 일으켜 영규대사와 합세하여 청주를 탈환하였다. 이어 금산에서 왜군을 막기 위해 남은 군사 700명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그들이 전사한 후 조헌 선생의 제자인 박정량과 전승업이 시체를 거두어 무덤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칠백의총이다. 조선 선조 36년(1603)에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가 세워지고, 인조 25년(1647)에 종용사를 세워 700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의총을 허물고 순의비를 폭파했으나, 금산군 사람들이 비석 조각을 감추어 보존하였다. 1971년 깨어진 조각을 시멘트 등으로 다시 붙여 복원하였으나, 2009년 석재로 재차 복원하고 비각도 새롭게 건립하였다.1963년 국가에서는 묘역을 확장하고 1976년에 기념관·순의탑을 새로 지었다. <br/><b>※(칠백의총 → 금산 칠백의총)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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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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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칠백의총은 충남 금산군 소재지 북쪽에 위치한 묘지이다. 임진왜란 발발 직후인 1592년(선조 25) 8월에 조헌과 영규대사의 지휘 아래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의병 700인의 묘이다. 조헌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은 4일 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다. 그 후 1603년(선조 36)에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를 세우고 1647년(인조 25) 사당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시설을 파괴한 후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황폐하게 만들어, 항일유적을 말살하였다. 광복 후 1952년에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사당을 다시 지었고 1970년에 묘역을 확장한 후 사당과 비석을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기념관을 신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일부 유물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매년 9월 23일 15시에 제향 행사를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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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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