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백세각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1길 21-335.9881, 128.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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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백세각 공식 관광정보

관광지 양식 · contentTypeId 12갱신 2026.06.07 · VisitKorea

성주 백세각은 조선 전기 사헌부 집의 등을 지냈던 송희규(1494~1558)가 1551년(명종 6)에 짓기 시작하여 다음 해에 완공한 건물이다. “비가 오는 날 자정에는 말발굽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오기 때문에 종손이 아니면 무서워서 잠을 못 잔다”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건물은 백세각과 사당, 관리사, 화장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세각의 평면은 ㅁ자 모양이며,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엮은 것과 대패를 쓰지 않고 손도끼(자귀)로만 다듬어 만든 것이 특징이다. 백세각은 독립운동과도 관련이 깊은 국가보훈처 현충 시설로서, 경북 유림단 파리장서 사건의 의논 장소로 사용되었다. 또한 유학자인 공산 송준필은 이곳에서 유림의 궐기를 독려하는 통고국내문을 작성하고, 제자들과 함께 1919년 4월 2일 성주 장날 만세 시위에 나누어 줄 태극기를 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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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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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백세각
🏛 한국관광공사 (KTO) 인증 정보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2 기준
휴무
연중무휴
지정일
1982.08.04
시대
조선시대
지정 종목
시도유형문화유산
유산 소개
조선 전기의 문신 송희규(1494∼1558)가 세운 곳으로 명종 6년(1551)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였다. “비가 오는 날 자정에는 말발굽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오기 때문에 종손이 아니면 무서워서 잠을 못잔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율곡, 한석봉, 채번암의 친필을 한 점씩 소장하고 있었으나 한석봉의 글은 1970년 도난 당했다. 규모는 앞면 7칸·옆면 7칸이고 평면은 ㅁ자형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이다.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엮은 점과 대패를 쓰지 않고 다른 연장(자귀)으로 나무를 다듬은 점이 특이한 건물이다. 일제시대 때에는 독립청원장서를 복사했던 곳이라고 하며 1919년 파리만국평화회의에 유림단이 장서를 건네주기 위해 모임을 갖았던 장소로, 3·1독립운동과도 관련이 있는 유서깊은 곳이다.
수량
1동
영업시간
상시 개방
주차
가능
전화
성주군 문화예술과 054-930-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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