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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사(대구) 공식 관광정보
부인사는 팔공산 남쪽 중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부인사에 관한 개창시기나 연혁은 잘 알려지지 않아 부인사의 창건연대와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편이다. 7세기 초 창건으로 전해오고 있는 현 부인사에는 신라 선덕여왕 어진을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보름에 신무동 주민과 사찰 측 및 경주 김 씨 종중에서 선덕여왕 숭모재를 지내는 것에서 부인사의 내력을 짐작할 만하다. 옛 절터가 지금은 포도밭으로 변해 있지만 현 사찰에서 200m 남쪽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고 팔공산 순환도로 남쪽으로 금당좌가 연접하고 있어 옛날 번창기의 사역 범위를 보여주고 있다. 현 부인사는 6·25 동란 때 불탄 것을 1959년 중건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승시장이 부인사에 개설될 정도로 아주 번창했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도전의 송화암종사우운시서의 기록 중에도 부인사가 팔공산에 위치한 거찰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인사는 고려 초조대장경의 판각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현종 4년(1013) 경부터 조각되기 시작하여 숙종 4년(1099)에 완성된 총 1만여 권의 초조대장경은 처음 여왕사, 개국사 등에 봉안하였다가 그 후 이곳 부인사에 봉안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여러 번의 인간이 있었다. 부인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사찰의 위치가 지금의 영천 근방으로 팔공산 동화사와 인접해 있었고, 거찰로서 고려 초조대장경을 보관하여 외침을 극복하려 했던 호국사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부인사는 팔공산국립공원 능선으로 향하는 탐방로의 기점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다. 부인사에서 이말재를 지나면 서봉과 비로봉, 동봉으로 이어지는 종주 코스를 오를 수 있으며, 톱날능선과 마당재를 거쳐 다시 부인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고즈넉한 사찰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부인사는 매력적인 시작점이자 반환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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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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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 2025.12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8.05.30
- 시대
- 고대/남북국시대/통일신라, 고려/고려 전기, 고려/고려 후기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부인사는 신라 선덕여왕의 명복을 빌던 법당으로 ‘부인(夫人)’이란 선덕여왕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곳은 부처의 힘으로 외침을 막고자 새긴 고려 초조대장경판을 보관하던 곳이었으며, 고려 무신집권에 항거해 일어나 승려들의 본거지이기도 하였으나,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고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다. 이 절터에는 축대, 초석, 당간지주 등 당시의 석조물이 많이 남아 있고, 주변에는 건물초석, 석탑, 석등들이 흩어져 있다. 이 석조물들은 당시 부인사의 규모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 수량
- 60,600㎡
- 주차
- 가능
- 전화
- 053-982-5006
붐빔 예보와 대안 장소를 불러왔습니다.
붐빔·추천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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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사(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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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 2025.12 기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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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남북국시대/통일신라, 고려/고려 전기, 고려/고려 후기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부인사는 신라 선덕여왕의 명복을 빌던 법당으로 ‘부인(夫人)’이란 선덕여왕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곳은 부처의 힘으로 외침을 막고자 새긴 고려 초조대장경판을 보관하던 곳이었으며, 고려 무신집권에 항거해 일어나 승려들의 본거지이기도 하였으나,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고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다. 이 절터에는 축대, 초석, 당간지주 등 당시의 석조물이 많이 남아 있고, 주변에는 건물초석, 석탑, 석등들이 흩어져 있다. 이 석조물들은 당시 부인사의 규모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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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사는 팔공산 남쪽 중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부인사에 관한 개창시기나 연혁은 잘 알려지지 않아 부인사의 창건연대와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편이다. 7세기 초 창건으로 전해오고 있는 현 부인사에는 신라 선덕여왕 어진을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보름에 신무동 주민과 사찰 측 및 경주 김 씨 종중에서 선덕여왕 숭모재를 지내는 것에서 부인사의 내력을 짐작할 만하다. 옛 절터가 지금은 포도밭으로 변해 있지만 현 사찰에서 200m 남쪽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고 팔공산 순환도로 남쪽으로 금당좌가 연접하고 있어 옛날 번창기의 사역 범위를 보여주고 있다. 현 부인사는 6·25 동란 때 불탄 것을 1959년 중건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승시장이 부인사에 개설될 정도로 아주 번창했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도전의 송화암종사우운시서의 기록 중에도 부인사가 팔공산에 위치한 거찰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인사는 고려 초조대장경의 판각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현종 4년(1013) 경부터 조각되기 시작하여 숙종 4년(1099)에 완성된 총 1만여 권의 초조대장경은 처음 여왕사, 개국사 등에 봉안하였다가 그 후 이곳 부인사에 봉안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여러 번의 인간이 있었다. 부인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사찰의 위치가 지금의 영천 근방으로 팔공산 동화사와 인접해 있었고, 거찰로서 고려 초조대장경을 보관하여 외침을 극복하려 했던 호국사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부인사는 팔공산국립공원 능선으로 향하는 탐방로의 기점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다. 부인사에서 이말재를 지나면 서봉과 비로봉, 동봉으로 이어지는 종주 코스를 오를 수 있으며, 톱날능선과 마당재를 거쳐 다시 부인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고즈넉한 사찰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부인사는 매력적인 시작점이자 반환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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