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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왜성 공식 관광정보
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 초인 선조 25년(1592) 7월부터 선조 26년(1593)에 걸쳐 일본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지휘하여 돌로 쌓은 전형적인 일본식 성이다. 죽도왜성과 부산왜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고 하여 봉화왜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해발 200m 산꼭대기에 본성을 두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제2성, 제3성을 두었다. 성벽의 길이는 4.2㎞, 높이는 6m, 기울기는 15도로 성벽이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며 성의 전체 모습은 직사각형이다. 비록 왜군들이 축성했으나 후에 조선에서도 사용했던 성으로 남문 일부의 훼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16세기 말의 일본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선조 27년(1594)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이곳에 와서 평화교섭을 했으나 실패했다. 선조 31년(1598) 명나라 마귀 장군의 도움으로 성을 다시 빼앗았고 1년 후 왜적과 싸우다 죽은 53명의 충신을 위해 창표당을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어 지금은 표지판만 남아 있다. 현재는 울산의 벚꽃 명소 중 하나이며 진하해수욕장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1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97.10.30
- 시대
- 임진왜란 시기 왜군이 지은 일본식 성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리에 있는 이 성은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돌로 쌓은 왜성이다. 기장죽도성과 부산진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하여 일명 ‘봉화성’이라고도 부른다. 산정상에 본성을 두고 동북쪽 경사진 외곽에 2∼3겹으로 높이 6m의 성벽을 계단식으로 다시 쌓아 성 전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놓았다. 이것은 각 구역이 독립적인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한 왜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안에는 중간지점에 선조 32년(1599)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애국지사 위패를 모셨던 창표당 터가 남아 있으며, 본성 맨 서쪽에는 장군수라는 우물터가, 외성 남쪽에는 병사들의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가 있다. 이 왜성은 비록 일본이 축성했으나 후에 우리측에서도 사용했던 성으로, 남문 일부의 훼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16세기말의 일본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수량
- 91,453.1㎡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불가능
- 반려동물
- 전구역 동반가능 · 목줄 착용 · 전 견종 동반 가능 · 맹견의 경우, 입마개 착용 필수 - 배변봉투 지참 및 배변처리 필수
- 전화
- 울주군청 문화도서관과 052-204-0322~4
붐빔 예보와 대안 장소를 불러왔습니다.
붐빔·추천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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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벅스/울산간절곶DT점연관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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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울산광역시 · 울주군 · 관광지
서생포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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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1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97.10.30
- 시대
- 임진왜란 시기 왜군이 지은 일본식 성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리에 있는 이 성은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돌로 쌓은 왜성이다. 기장죽도성과 부산진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하여 일명 ‘봉화성’이라고도 부른다. 산정상에 본성을 두고 동북쪽 경사진 외곽에 2∼3겹으로 높이 6m의 성벽을 계단식으로 다시 쌓아 성 전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놓았다. 이것은 각 구역이 독립적인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한 왜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안에는 중간지점에 선조 32년(1599)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애국지사 위패를 모셨던 창표당 터가 남아 있으며, 본성 맨 서쪽에는 장군수라는 우물터가, 외성 남쪽에는 병사들의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가 있다. 이 왜성은 비록 일본이 축성했으나 후에 우리측에서도 사용했던 성으로, 남문 일부의 훼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16세기말의 일본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수량
- 91,453.1㎡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불가능
- 반려동물
- 전구역 동반가능 · 목줄 착용 · 전 견종 동반 가능 · 맹견의 경우, 입마개 착용 필수 - 배변봉투 지참 및 배변처리 필수
- 전화
- 울주군청 문화도서관과 052-204-0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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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 초인 선조 25년(1592) 7월부터 선조 26년(1593)에 걸쳐 일본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지휘하여 돌로 쌓은 전형적인 일본식 성이다. 죽도왜성과 부산왜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고 하여 봉화왜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해발 200m 산꼭대기에 본성을 두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제2성, 제3성을 두었다. 성벽의 길이는 4.2㎞, 높이는 6m, 기울기는 15도로 성벽이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며 성의 전체 모습은 직사각형이다. 비록 왜군들이 축성했으나 후에 조선에서도 사용했던 성으로 남문 일부의 훼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16세기 말의 일본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선조 27년(1594)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이곳에 와서 평화교섭을 했으나 실패했다. 선조 31년(1598) 명나라 마귀 장군의 도움으로 성을 다시 빼앗았고 1년 후 왜적과 싸우다 죽은 53명의 충신을 위해 창표당을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어 지금은 표지판만 남아 있다. 현재는 울산의 벚꽃 명소 중 하나이며 진하해수욕장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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