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sitKorea OpenAPI
진도 용장성 공식 관광정보
진도의 용장성은 삼별초가 진도에 설치한 대표적인 항몽 시설이다. 산성은 진도 북쪽 해안의 산 능선에 있으며 북쪽 해안에는 진도의 관문인 벽파진이 있는데 울돌목으로 이어지는 조운로의 길목이기도 하다. 배중손을 지도자로 한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왕온을 새 왕으로 받들고 관부를 구성하고 관리를 임명하여 몽고에게 항복한 고려 조정에 대립, 정권을 세웠다. 1,000여 척의 배에 재물과 인원 등을 싣고 진도 벽파진에 도착, 용장성에 터를 잡은 후 산성을 개축하고 성안의 용장사를 궁궐로 삼고 각종 건물을 지어 왕을 황제로 칭하였다. 2009년~2010년에 진행된 궁궐터 전면 조사를 통해 20여 채 이상의 건물이 치밀하게 배치되었는데, 마치 개경 만월대를 연상시키는 구조여서 계획하에 궁궐이 조성되었다고 보인다. 현재 성의 대부분은 원형이 사라진 상태이며, 성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성내의 용장사지 및 행궁지가 보존되고 있다. 주변에 용장성 홍보관과 고려항몽충혼탑과 배중손을 모시는 정충사가 있어 연계하여 방문할 수 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1 기준- 휴무
- 연중 무휴
- 지정일
- 1964.06.10
- 시대
- 고려시대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배중손이 이끌던 삼별초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항쟁을 벌였던 장소이다. 고려 고종 18년(1231)부터 침략해 오던 몽골과의 전쟁을 벌이기 위해 고려는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로 옮겼다. 그리고 40여 년 동안 삼별초가 중심이 되어 몽골과의 전쟁을 벌였으나, 원종 11년(1270) 고려가 몽골에 항복을 하였다. 몽골에 대한 항복을 받아들일 수 없던 배중손을 비롯한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承化候溫)을 왕으로 삼아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에 궁궐과 성을 쌓고 몽골과의 전쟁을 계속하였다. 이때 쌓은 성이 바로 용장성이다. 지금은 용장산 기슭에 약간의 성벽이 부분적으로 남아있으며, 성 안에는 용장사가 있던 절터와 궁궐의 자리가 남아있다. 용장성 안에는 성황산이 있는데, 이 산에도 산성을 쌓은 흔적이 보인다. 성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하고 고려의 왕실과 대립되는 궁궐이 만들어진 점에서 가치있는 유적이다. <br/><b>※(용장산성 → 진도 용장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수량
- 535,833㎡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진도 용장성홍보관 061-543-8522
붐빔 예보와 대안 장소를 불러왔습니다.
붐빔·추천코스
오늘 여유실시간·장소 간 비교 아님한국관광공사 30일 방문 집중 예측 — 이 장소의 최근 예측 범위 안에서 상대적인 위치입니다. 붐빌 것 같은 날은 아래 대안이나 이른 시간을 고려해 보세요.
붐빌 땐, 대신 가볼 만한 곳
한국관광공사 연관 방문 데이터 기반 — 점선 항목은 아직 상세 정보가 연결되지 않았고, 붐빔 표시가 없는 곳은 한적함을 확인하지 못한 후보입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전라남도 · 진도군 · 관광지
진도 용장성

장소 명예 보드아직 첫 사진과 장소 마스터가 비어 있어요.
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1 기준- 휴무
- 연중 무휴
- 지정일
- 1964.06.10
- 시대
- 고려시대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배중손이 이끌던 삼별초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항쟁을 벌였던 장소이다. 고려 고종 18년(1231)부터 침략해 오던 몽골과의 전쟁을 벌이기 위해 고려는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로 옮겼다. 그리고 40여 년 동안 삼별초가 중심이 되어 몽골과의 전쟁을 벌였으나, 원종 11년(1270) 고려가 몽골에 항복을 하였다. 몽골에 대한 항복을 받아들일 수 없던 배중손을 비롯한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承化候溫)을 왕으로 삼아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에 궁궐과 성을 쌓고 몽골과의 전쟁을 계속하였다. 이때 쌓은 성이 바로 용장성이다. 지금은 용장산 기슭에 약간의 성벽이 부분적으로 남아있으며, 성 안에는 용장사가 있던 절터와 궁궐의 자리가 남아있다. 용장성 안에는 성황산이 있는데, 이 산에도 산성을 쌓은 흔적이 보인다. 성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하고 고려의 왕실과 대립되는 궁궐이 만들어진 점에서 가치있는 유적이다. <br/><b>※(용장산성 → 진도 용장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수량
- 535,833㎡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진도 용장성홍보관 061-543-8522
VisitKorea OpenAPI
진도 용장성 공식 관광정보
진도의 용장성은 삼별초가 진도에 설치한 대표적인 항몽 시설이다. 산성은 진도 북쪽 해안의 산 능선에 있으며 북쪽 해안에는 진도의 관문인 벽파진이 있는데 울돌목으로 이어지는 조운로의 길목이기도 하다. 배중손을 지도자로 한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왕온을 새 왕으로 받들고 관부를 구성하고 관리를 임명하여 몽고에게 항복한 고려 조정에 대립, 정권을 세웠다. 1,000여 척의 배에 재물과 인원 등을 싣고 진도 벽파진에 도착, 용장성에 터를 잡은 후 산성을 개축하고 성안의 용장사를 궁궐로 삼고 각종 건물을 지어 왕을 황제로 칭하였다. 2009년~2010년에 진행된 궁궐터 전면 조사를 통해 20여 채 이상의 건물이 치밀하게 배치되었는데, 마치 개경 만월대를 연상시키는 구조여서 계획하에 궁궐이 조성되었다고 보인다. 현재 성의 대부분은 원형이 사라진 상태이며, 성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성내의 용장사지 및 행궁지가 보존되고 있다. 주변에 용장성 홍보관과 고려항몽충혼탑과 배중손을 모시는 정충사가 있어 연계하여 방문할 수 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붐빔 예보와 대안 장소를 불러왔습니다.
붐빔·추천코스
오늘 여유실시간·장소 간 비교 아님한국관광공사 30일 방문 집중 예측 — 이 장소의 최근 예측 범위 안에서 상대적인 위치입니다. 붐빌 것 같은 날은 아래 대안이나 이른 시간을 고려해 보세요.
붐빌 땐, 대신 가볼 만한 곳
한국관광공사 연관 방문 데이터 기반 — 점선 항목은 아직 상세 정보가 연결되지 않았고, 붐빔 표시가 없는 곳은 한적함을 확인하지 못한 후보입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함께 가면 좋은 곳
승인된 코스·여행 글·공식 이동 통계에서 이 장소와 묶였거나,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곳들입니다.
이 조합으로 코스 만들기시티투어 버스로 갈 수 있어요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티투어 1개 코스가 이곳을 지납니다. 운행 요일과 요금은 운영기관이 공개한 원문 그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