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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사비 공식 관광정보
정열사는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김천일 선생을 비롯한 나주의 충절 인물 다섯 분을 모신 사우이다. 의병장 김천일은 중종 32년 나주에서 태어나 전란 시 각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우고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패하면서 남강에 투신 자결하였다. 이 전투의 패배 직후 장수 여인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 순절한 사건은 유명하다. 정열사가 최초로 건립된 것은 선조 39년(1606)으로서 현 나주 고교 뒤편 월정봉 아래에 위치했다가 이듬해인 1607년 정열사로 사액되면서 사우를 현 나주 잠사 공장 부근으로 옮겼다. 이후에도 여러 번 자리를 옮기고 보수를 거치면서 1984년 현재의 대호동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반의 규모로서 팔작지붕이고, 내삼문과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평대문이다. 정열사비는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장유 선생이 지었고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활동과 국내 전투 상황이 자세히 적혀있다. 이곳에서 차량 이동 7분, 약 3.8㎞ 거리에 국립나주숲체원이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 2025.11 기준- 지정일
- 1981.10.20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천일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김천일(1537∼1593)은 이항 선생 아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22세 때 학문이 뛰어나 벼슬길에 오른 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 때 나주에 있다가 고경명, 박광옥, 최경희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왜적이 남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하자 적을 따라가 진주성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으나 성이 함락당하여 아들 상건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네모난 형태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머릿돌에는 용을 생동감있게 조각해 놓았고, 비문에는 김천일의 의병활동을 자세히 적고 있다. 그가 죽은 지 34년 뒤인 인조 4년(1626) 이곳 유림들이 김천일을 모시는 사당인 정열사에 이 비를 세웠다. 비문은 장유가 글을 짓고, 이숙이 글씨를 썼으며, 앞면에 새긴 비의 명칭은 김상용의 글씨이다.
- 수량
- 1기
- 전화
- 061-339-8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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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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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 2025.11 기준- 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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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천일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김천일(1537∼1593)은 이항 선생 아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22세 때 학문이 뛰어나 벼슬길에 오른 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 때 나주에 있다가 고경명, 박광옥, 최경희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왜적이 남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하자 적을 따라가 진주성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으나 성이 함락당하여 아들 상건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네모난 형태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머릿돌에는 용을 생동감있게 조각해 놓았고, 비문에는 김천일의 의병활동을 자세히 적고 있다. 그가 죽은 지 34년 뒤인 인조 4년(1626) 이곳 유림들이 김천일을 모시는 사당인 정열사에 이 비를 세웠다. 비문은 장유가 글을 짓고, 이숙이 글씨를 썼으며, 앞면에 새긴 비의 명칭은 김상용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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