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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만인의총 공식 관광정보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 관. 군 1만여 의사의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1592) 때 호남을 침범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왜군은 1597년 11만 대군으로 다시 침략하여 적의 우근은 전주성을, 좌군과 수군 5만 6천은 남원성을 공략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해 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1천여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으로 주민 6천여 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분투 끝에 장렬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성민들은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1612년(광해 4년) 충렬사를 건립하였다. 몇 번의 이전을 거쳐 정부의 지원과 전 도민의 정성 어린 헌수로 현재의 충렬사에 50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만인의총에서는 매년 9월 26일에 만인의사에 대한 제향을 올려,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이곳은 문화관광해설사와 관람하며 호국선열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고, 소중한 추억을 담을 수 있다.
- 체험 가이드
- 순의제향(매년 9.16) / 추모 예능대회
- 체험 연령
- 추모 예능대회 : 초등 및 중학교 재학생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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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0 기준- 휴무
- 매주 월요일
- 지정일
- 1981.04.01
- 시대
- 조선 선조 30년(1597)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때 남원성을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들을 함께 묻은 무덤이다. 왜군은 임진왜란때 전라도지방을 차지하지 못해서 결국 패했다고 생각하여, 정유재란 때는 전라도 지역을 점령한 뒤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선조 30년(1597) 7월말 왜군 11만명이 황석산성과 남원을 공격하였다. 남원은 지역적으로 전라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국가에서도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왜군의 침입에 대항하여 군·관·민이 합심하여 싸웠으나 남원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만 여명의 관리와 군사, 백성이 사망하였는데, 임진왜란이후 전사한 사람들의 시신을 한곳에 합장하였고 광해군 4년(1612) 충렬사를 세워 8충신을 제향 하였다. 처음 이 무덤은 남원역 부근에 있었으나 민가에 둘러싸이게 되어 1964년 현재 자리로 이전하였다. <br/><b>※(만인의총 → 남원 만인의총)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수량
- 89,168㎡
- 영업시간
-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
- 주차
- 가능
- 전화
- 만인의총 관리소 063-636-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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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만인의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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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 2025.10 기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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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04.01
- 시대
- 조선 선조 30년(1597)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때 남원성을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들을 함께 묻은 무덤이다. 왜군은 임진왜란때 전라도지방을 차지하지 못해서 결국 패했다고 생각하여, 정유재란 때는 전라도 지역을 점령한 뒤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선조 30년(1597) 7월말 왜군 11만명이 황석산성과 남원을 공격하였다. 남원은 지역적으로 전라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국가에서도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왜군의 침입에 대항하여 군·관·민이 합심하여 싸웠으나 남원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만 여명의 관리와 군사, 백성이 사망하였는데, 임진왜란이후 전사한 사람들의 시신을 한곳에 합장하였고 광해군 4년(1612) 충렬사를 세워 8충신을 제향 하였다. 처음 이 무덤은 남원역 부근에 있었으나 민가에 둘러싸이게 되어 1964년 현재 자리로 이전하였다. <br/><b>※(만인의총 → 남원 만인의총)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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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업시간
-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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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
- 만인의총 관리소 063-636-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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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 관. 군 1만여 의사의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1592) 때 호남을 침범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왜군은 1597년 11만 대군으로 다시 침략하여 적의 우근은 전주성을, 좌군과 수군 5만 6천은 남원성을 공략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해 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1천여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으로 주민 6천여 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분투 끝에 장렬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성민들은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1612년(광해 4년) 충렬사를 건립하였다. 몇 번의 이전을 거쳐 정부의 지원과 전 도민의 정성 어린 헌수로 현재의 충렬사에 50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만인의총에서는 매년 9월 26일에 만인의사에 대한 제향을 올려,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이곳은 문화관광해설사와 관람하며 호국선열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고, 소중한 추억을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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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의제향(매년 9.16) / 추모 예능대회
- 체험 연령
- 추모 예능대회 : 초등 및 중학교 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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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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