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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충민사 공식 관광정보


+19충민사는 마래산(385.2m)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선조 34년(1601) 체찰사 이항복(1556~1618)이 왕명을 받아 임진왜란이 끝난 뒤의 민심을 살펴본 후 통제사 이시언에게 명하여 건립한 것이다. 충민사를 세우자 우부승지 김상용이 임금께 이 사우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간청하여 선조가 직접 이름을 짓고 그것을 새긴 현판을 받음으로써 이충무공과 관련된 최초의 사당이 되었는데, 함께 충무공을 기리는 통영의 충열사보다는 62년, 숙종 30년(1704)에 세워진 아산의 현충사보다는 103년 전의 일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여러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제사를 모시는 분으로 하고 의민공 이억기, 충현공 안홍국이 좌우로 배향되었다. 그 후 숙종 35년 충민공 이봉상을 신묘로 모시고 석천제를 창설하였으며, 영조 8년(1732)에 사우를 중수하였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충민단만 남기고 모두 철거되었으나, 고종 10년(1873) 지역 유림들의 진정으로 건물을 다시 세우고 판서 윤용구가 쓴 충민사 현판을 걸었다. 1919년에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된 후, 1947년 2칸 집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지역 주민의 노력으로 다시 세워 1993년 6월 1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바로 옆에 수호사찰 석천사가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23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0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93.06.01
- 시대
- 1601년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충무공 이순신, 의민공 이억기, 충현공 안홍국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은 임진왜란 때 목포, 노량, 당포, 한산도, 부산포, 명량 해전에서 왜적을 무찔러 우리의 바다를 지켰고, 선조 31년(1598) 노량에서 도망가는 왜적을 무찌르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글에도 재주가 있어 『난중일기』와 같은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며 전쟁터에서 읊은 시조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좋은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의민공 이억기(1561∼1597)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당항포, 한산도, 안골포, 부산포 등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순신 장군이 감옥에 갇히자 이항복·김명원들과 함께 무죄를 주장했으며,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충현공 안홍국(?∼1597)은 임진왜란 때 왕을 모시고 의주까지 따라갔으며 이순신 장군의 밑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그 뒤 정유재란 때 안골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하였다. 이 사당은 선조 34년(1601) 나라를 위한 세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영의정 이항복이 임금께 청하여 통제사 이시언이 세웠다.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에 따라 폐지하였다가, 고종 10년(1873)에 다시 세운 뜻 깊은 곳이다.
- 수량
- 97,412㎡
- 영업시간
- 09:00~18:00
- 주차
- 가능
- 전화
- 061-659-4746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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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 여수시 · 관광지
여수 충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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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 2025.10 기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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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06.01
- 시대
- 1601년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충무공 이순신, 의민공 이억기, 충현공 안홍국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은 임진왜란 때 목포, 노량, 당포, 한산도, 부산포, 명량 해전에서 왜적을 무찔러 우리의 바다를 지켰고, 선조 31년(1598) 노량에서 도망가는 왜적을 무찌르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글에도 재주가 있어 『난중일기』와 같은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며 전쟁터에서 읊은 시조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좋은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의민공 이억기(1561∼1597)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당항포, 한산도, 안골포, 부산포 등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순신 장군이 감옥에 갇히자 이항복·김명원들과 함께 무죄를 주장했으며,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충현공 안홍국(?∼1597)은 임진왜란 때 왕을 모시고 의주까지 따라갔으며 이순신 장군의 밑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그 뒤 정유재란 때 안골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하였다. 이 사당은 선조 34년(1601) 나라를 위한 세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영의정 이항복이 임금께 청하여 통제사 이시언이 세웠다.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에 따라 폐지하였다가, 고종 10년(1873)에 다시 세운 뜻 깊은 곳이다.
- 수량
- 97,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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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충민사는 마래산(385.2m)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선조 34년(1601) 체찰사 이항복(1556~1618)이 왕명을 받아 임진왜란이 끝난 뒤의 민심을 살펴본 후 통제사 이시언에게 명하여 건립한 것이다. 충민사를 세우자 우부승지 김상용이 임금께 이 사우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간청하여 선조가 직접 이름을 짓고 그것을 새긴 현판을 받음으로써 이충무공과 관련된 최초의 사당이 되었는데, 함께 충무공을 기리는 통영의 충열사보다는 62년, 숙종 30년(1704)에 세워진 아산의 현충사보다는 103년 전의 일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여러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제사를 모시는 분으로 하고 의민공 이억기, 충현공 안홍국이 좌우로 배향되었다. 그 후 숙종 35년 충민공 이봉상을 신묘로 모시고 석천제를 창설하였으며, 영조 8년(1732)에 사우를 중수하였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충민단만 남기고 모두 철거되었으나, 고종 10년(1873) 지역 유림들의 진정으로 건물을 다시 세우고 판서 윤용구가 쓴 충민사 현판을 걸었다. 1919년에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된 후, 1947년 2칸 집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지역 주민의 노력으로 다시 세워 1993년 6월 1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바로 옆에 수호사찰 석천사가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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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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