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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사 공식 관광정보


+2부여군 구룡면에 있는 사우로 삼학사라고 불리는 조선 중기 충신 윤집·오달제·홍익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숙종 43년(1717)에 건립하였고 경종 1년(1721)에 창열사란 현판을 임금이 내렸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손되지 않았다. 사당 건물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내삼문을 거쳐 아래로 내려가면 강당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근래 지은 외삼문이 있다. 병자호란 때인 인조 14년 조선을 속국으로 하려는 모욕적인 문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을 살려 보내지 말자고 주장하였으나, 이듬해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겪으며 모욕적인 화의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삼학사는 청나라에 잡혀가게 되었다. 청 태종이 직접 이들의 심문에 참여하여 설득과 회유를 하였으나 심한 고문을 견디면서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다가 결국 중국 선양에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청 태종도 이들의 기개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후대인들도 이들을 삼학사라고 부르고 높은 충절과 고귀한 죽음을 기렸다. 주변 관광 명소는 부여 금사리 성당, 청일사, 홍산향교, 부여 상천지가 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6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79.12.19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삼학사(三學士)라고 불리는 조선 중기 충신 윤집(1606∼1637)·오달제(1609∼1637)·홍익한(1586∼1637)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병자호란 때인 인조 14년(1636) 조선을 속국으로 하려는 모욕적인 문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을 살려 보내지 말자고 주장하였으나, 이듬해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겪으며 모욕적인 화의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삼학사 3분은 청나라에 잡혀가게 되었다. 청태종이 직접 이들의 심문에 참가하여 설득과 회유를 하였으나 심한 고문을 견디면서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다가 결국 중국 심양에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청태종도 이들의 기개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후대인들도 이들을 삼학사라고 부르고 높은 충절과 고귀한 죽음을 기렸다. 숙종 43년(1717) 세웠고 경종 1년(1721)에는 ‘창렬사’란 현판을 임금이 내렸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손되지 않았다. 사당 건물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내삼문을 거쳐 아래로 내려가면 강당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근래 지은 외삼문이 있다.
- 수량
- 1,226㎡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부여군 문화유산정비팀 041-830-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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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산 소개
- 삼학사(三學士)라고 불리는 조선 중기 충신 윤집(1606∼1637)·오달제(1609∼1637)·홍익한(1586∼1637)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병자호란 때인 인조 14년(1636) 조선을 속국으로 하려는 모욕적인 문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을 살려 보내지 말자고 주장하였으나, 이듬해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겪으며 모욕적인 화의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삼학사 3분은 청나라에 잡혀가게 되었다. 청태종이 직접 이들의 심문에 참가하여 설득과 회유를 하였으나 심한 고문을 견디면서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다가 결국 중국 심양에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청태종도 이들의 기개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후대인들도 이들을 삼학사라고 부르고 높은 충절과 고귀한 죽음을 기렸다. 숙종 43년(1717) 세웠고 경종 1년(1721)에는 ‘창렬사’란 현판을 임금이 내렸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손되지 않았다. 사당 건물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내삼문을 거쳐 아래로 내려가면 강당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근래 지은 외삼문이 있다.
- 수량
- 1,226㎡
- 영업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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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
- 전화
- 부여군 문화유산정비팀 041-830-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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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여군 구룡면에 있는 사우로 삼학사라고 불리는 조선 중기 충신 윤집·오달제·홍익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숙종 43년(1717)에 건립하였고 경종 1년(1721)에 창열사란 현판을 임금이 내렸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손되지 않았다. 사당 건물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내삼문을 거쳐 아래로 내려가면 강당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근래 지은 외삼문이 있다. 병자호란 때인 인조 14년 조선을 속국으로 하려는 모욕적인 문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을 살려 보내지 말자고 주장하였으나, 이듬해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겪으며 모욕적인 화의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삼학사는 청나라에 잡혀가게 되었다. 청 태종이 직접 이들의 심문에 참여하여 설득과 회유를 하였으나 심한 고문을 견디면서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다가 결국 중국 선양에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청 태종도 이들의 기개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후대인들도 이들을 삼학사라고 부르고 높은 충절과 고귀한 죽음을 기렸다. 주변 관광 명소는 부여 금사리 성당, 청일사, 홍산향교, 부여 상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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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6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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