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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소석고택 공식 관광정보
영동 소석고택은 고종 22년(1885)에 지은 집이다. 넓은 들 위에 자리 잡은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광채 등이 있었으나, 행랑채와 광채는 1920년대에 철거되었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이 멀찌감치 떨어져 남아있고 넓은 들 위에 자리 잡아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을 지닌다. 건물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집의 앞쪽 약간 경사진 터전에 ‘ㄷ’ 자형의 사랑채가 위치하는데 뒤편이 높고 앞쪽이 낮은 상태다. 사랑채는 중앙의 사랑방과 사랑대청을 중심으로 왼쪽 꺾인 부분은 뒷방, 사랑부엌, 앞방이 위치하고, 오른쪽으로는 골방, 건넌방, 누마루가 위치한다. 누마루는 사방을 개방했는데 서쪽으로만 간단하게 난간을 시설하였다. 안채는 남부(경기도 이남의 땅) 형식의 평면 구성을 이루어서, 부엌, 안방, 웃방, 2칸 대청, 건넌방의 차례로 배열되었다. 안방의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여 대청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부엌의 앞마당에는 장독대가 있다. 현재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지정 당시 명칭은 ‘영동송재문가옥’이었으나, 2007년 1월 29일에 ‘영동 소석고택’으로 지정 명칭을 변경하였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7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84.01.14
- 시대
- 조선 고종 22년(1885)
- 지정 종목
- 국가민속문화유산
- 유산 소개
- 고종 22년(1885)에 지은 집이다. 넓은 들 위에 자리잡은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행랑채·광채 등이 있었으나, 행랑채와 광채는 1920년대에 철거되었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이 멀찌감치 떨어져 남아있고 넓은 들 위에 자리잡아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을 지닌다. 집의 앞쪽 약간 경사진 터전에 'ㄷ'자형의 사랑채가 위치하는데 뒤편이 높고 앞쪽이 낮은 상태다. 사랑채는 중앙의 사랑방과 사랑대청을 중심으로 왼쪽 꺾여진 부분은 뒷방·사랑부엌·앞방이 위치하고, 오른쪽으로는 골방·건넌방·누마루가 위치한다. 누마루는 사방을 개방했는데 서쪽으로만 간단하게 난간을 시설하였다. 안채는 '一'자형 평면으로 왼쪽부터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이 배열되었다. 안방의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여 대청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부엌의 앞마당에는 장독대가 있다. 조사 당시에 이미 많이 낡고 퇴락해 있었으나 남아있는 것만이라도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인정되어 지정·보존되고 있다. 지정 당시 명칭은 '영동송재문가옥(永同宋在文家屋)'이었으나, 가옥을 지은 송병필의 호 ‘소석'을 따라 ‘영동 소석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 하였다. <b>※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b>
- 수량
- 7필지/3,605㎡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43-740-3203
아직 붐빔 예보나 대안 장소가 없습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충청북도 · 영동군 · 관광지
영동 소석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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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84.01.14
- 시대
- 조선 고종 22년(1885)
- 지정 종목
- 국가민속문화유산
- 유산 소개
- 고종 22년(1885)에 지은 집이다. 넓은 들 위에 자리잡은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행랑채·광채 등이 있었으나, 행랑채와 광채는 1920년대에 철거되었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이 멀찌감치 떨어져 남아있고 넓은 들 위에 자리잡아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을 지닌다. 집의 앞쪽 약간 경사진 터전에 'ㄷ'자형의 사랑채가 위치하는데 뒤편이 높고 앞쪽이 낮은 상태다. 사랑채는 중앙의 사랑방과 사랑대청을 중심으로 왼쪽 꺾여진 부분은 뒷방·사랑부엌·앞방이 위치하고, 오른쪽으로는 골방·건넌방·누마루가 위치한다. 누마루는 사방을 개방했는데 서쪽으로만 간단하게 난간을 시설하였다. 안채는 '一'자형 평면으로 왼쪽부터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이 배열되었다. 안방의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여 대청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부엌의 앞마당에는 장독대가 있다. 조사 당시에 이미 많이 낡고 퇴락해 있었으나 남아있는 것만이라도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인정되어 지정·보존되고 있다. 지정 당시 명칭은 '영동송재문가옥(永同宋在文家屋)'이었으나, 가옥을 지은 송병필의 호 ‘소석'을 따라 ‘영동 소석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 하였다. <b>※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b>
- 수량
- 7필지/3,605㎡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43-740-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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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소석고택 공식 관광정보
영동 소석고택은 고종 22년(1885)에 지은 집이다. 넓은 들 위에 자리 잡은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광채 등이 있었으나, 행랑채와 광채는 1920년대에 철거되었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이 멀찌감치 떨어져 남아있고 넓은 들 위에 자리 잡아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을 지닌다. 건물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집의 앞쪽 약간 경사진 터전에 ‘ㄷ’ 자형의 사랑채가 위치하는데 뒤편이 높고 앞쪽이 낮은 상태다. 사랑채는 중앙의 사랑방과 사랑대청을 중심으로 왼쪽 꺾인 부분은 뒷방, 사랑부엌, 앞방이 위치하고, 오른쪽으로는 골방, 건넌방, 누마루가 위치한다. 누마루는 사방을 개방했는데 서쪽으로만 간단하게 난간을 시설하였다. 안채는 남부(경기도 이남의 땅) 형식의 평면 구성을 이루어서, 부엌, 안방, 웃방, 2칸 대청, 건넌방의 차례로 배열되었다. 안방의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여 대청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부엌의 앞마당에는 장독대가 있다. 현재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지정 당시 명칭은 ‘영동송재문가옥’이었으나, 2007년 1월 29일에 ‘영동 소석고택’으로 지정 명칭을 변경하였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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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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