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신문왕릉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453-135.8180, 129.2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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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문왕릉 공식 관광정보

관광지 양식 · contentTypeId 12갱신 2026.05.30 · VisitKorea
경주_경주 신문왕릉 (3)
ⓒ한국관광공사 공식사진 · 4
경주_경주 신문왕릉 (1)
경주_경주 신문왕릉 (5)+1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옛 백제와 고구려 백성을 융합하는데 힘썼다.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귀족들의 기반이 되면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였다. 지방을 통치하기 위해 전국을 아홉 개의 주로 나누고 중요한 거점 다섯 곳에 소경을 설치하였다. 신문왕이 죽은 후에는 낭산 동쪽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낭산 남쪽 끝자락에 있다. 무덤은 높이 7.6m, 지름 29.3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가장자리의 둘레돌은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5단으로 쌓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었다. 바깥쪽 사다리꼴 모양의 석재를 받쳐 놓았다. 정남쪽에 배치한 받침석의 윗부분에 ‘문(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이 무덤방으로 들어가는 널길 입구라는 것을 표시한 듯하다.

관광정보: 한국관광공사 VisitKorea Open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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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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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문왕릉
🏛 한국관광공사 (KTO) 인증 정보

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 2025.12 기준
휴무
연중무휴
지정일
1969.08.27
시대
통일신라 신문왕(692년경)
지정 종목
사적
유산 소개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신라 중대 전제왕권을 확고히 하였다.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지방통치를 위해 9주5소경제도를 설치하였고, 고구려·백제·말갈인을 포함시킨 중앙 군사조직인 9서당을 완성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를 정비하여 전제왕권을 다졌다. 높이 7.6m, 지름 29.3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둘레돌은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5단으로 쌓았고 44개의 삼각형 받침돌이 둘레돌을 튼튼하게 받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낭산(狼山) 동쪽에 신문왕을 장사지냈다고 되어있어, 낭산 동쪽 황복사터 아래쪽 12지신상이 남아있는 무너진 왕릉을 신문왕 무덤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br/><b>※(신라신문왕릉 → 경주 신문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수량
15,463㎡
영업시간
상시 개방
전화
경주시청 문화유산과 054-779-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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