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충사적비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763-135.9172, 128.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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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충사적비 공식 관광정보

관광지 양식 · contentTypeId 12갱신 2026.06.05 · VisitKorea

성주읍 서문고개 성주여고 입구 맞은편에 있는 쌍충사적비는 임진왜란 때 영남지방에서 의병을 모아 왜적과 싸우다가 성주성(星州城) 싸움에서 전사한 제말(諸沫) 장군과 진주성(晋州城) 싸움을 돕기 위해 출전하다가 전사한 조카 제홍록(諸弘祿)의 업적을 새겨 정조 16년(1792)에 세운 비이다. 제말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웅천(熊川)·김해(金海)·의령(宜寧)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웠으며 성주성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제말의 조카인 제홍록은 숙부와 더불어 큰 전공을 세웠으며,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다가 정유재란 때 전사했다. 비는 전체 높이가 325㎝이며 높이가 216㎝·너비 79㎝·두께 37㎝ 규모의 비신을 받침돌 위에 올리고 이수를 얹은 모습이다. 이수에는 서로 엉킨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맞대고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서유린(徐有隣) 이 글을 짓고 이병모(李秉模)가 글씨를 썼으며 성주목사를 지냈던 조윤형(趙允亨)이 전서했다. 쌍충사적비는 처음에는 지금의 성주초등학교 앞 길가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 관헌들에 의해 비각이 헐리고 비가 방치되었던 것을 1940년 경에 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옮겨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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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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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충사적비
🏛 한국관광공사 (KTO) 인증 정보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3 기준
휴무
연중무휴
지정일
1974.12.10
시대
조선시대
지정 종목
시도유형문화유산
유산 소개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제말(諸沫)과 그의 조카인 제홍록(諸弘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성주목사로 있던 제말은 의병을 모아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제홍록과 함께 전사하였다. 선조는 그의 공을 치하하여 병조판서로 벼슬을 높이고 이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비의 형태는 네모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용을 조각한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정조 16년(1792)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서유린이 글을 짓고 이병모가 글씨를 썼으며, 조윤정이 비의 제목을 새겼다. 원래의 자리는 성주초등학교 교정이었는데, 학교 운동장을 넓히면서 1940년 경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들의 묘소는 경남 창원군 진송면 다구리에 있으며, 같은 비가 경남 진주시 촉수루 뒷편에 하나 더 있다.
수량
1기
영업시간
상시 개방
주차
불가능
전화
성주군청 문화예술과 054-930-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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