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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달전재사와 하학재 공식 관광정보
달전재사는 조선 중기 문신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재사(묘소나 사묘 옆에 지은 집)이다. 1402년 경에 창건한 건물이라고 구전될 뿐 확실한 근거자료는 없다. 이언적은 1514년 문과에 급제한 인물로 1530년 사간원 사간에 임명되었는데, 김안로의 재등용을 반대하다 관직에서 쫓겨나 귀향하였다. 1547년 을사사화의 여파인 양재역벽서 사건이 일어나 사람들이 다시 축출될 때 그도 연루되어 강제로 유배되었다. 이 재사는 ‘ㅁ’자형 팔작 기와지붕으로 정면 6칸, 측면 6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배치 형태가 다른 재사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배치 수법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학재는 포항시 남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재실(제사를 위한 공간)이다. 조선 중종 때 월성군에 봉해진 우재 손중돈의 묘 재사이다. 손중돈은 양동 마을 입향조인 손소의 둘째 아들로 1489년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길에 올랐으나, 김해도부사 때 간언하다 파직되었으나 중종 즉위 후 상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로도 여러 벼슬을 하며 지내다가 한성에서 별세하였다. 하학재는 후손인 손종하가 1663년 건립하였고 1873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재사는 깬 돌로 쌓은 2중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평면 구성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일자형 집이며 우물마루를 깐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이 있다. 재사 내의 건물로는 하학재 이외에 제수청, 주사가 있다.
- ✓ 주차
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 2025.11 기준- 지정일
- 2012.10.22
- 지정 종목
- 시도민속문화유산
- 유산 소개
- 원래는 승려들이 거주하였다고 전하는 건물이지만 현재는 조선 전기 문신인 이언적(1491∼1553) 선생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한 재실로 쓰고 있다. 그는 24세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정랑, 밀양부사를 거쳐 중종 25년(1530) 사간이 되었다. 그러나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며 벼슬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김안로가 물러난 뒤 홍문관교리, 직제학이 되었고 전주부윤으로 재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그의 송덕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 뒤 명종 2년(1547) 양재역 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저술을 남기며 생을 마쳤다. 그는 조광조·김굉필·정여창과 함께 동방 4현 중 한 분으로 손꼽히며 조선초 성리학의 성격과 방향을 정립한 선구자이다. 건물은 조선 태종 2년(1402)에 세운 건물이라고 하나 근거가 될만한 자료는 없다. 앞면 6칸·옆면 6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전체적으로 ㅁ자형 구조로 건물 뒤쪽에 누각 형태의 난간이 달린 마루가 있고, 좌우 측면에는 좁은 출입문을 두어 다른 재실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 수량
- 1동
- 영업시간
- 사전 협의 후 관람 가능
- 주차
- 가능
- 전화
- 포항시 문화예술과 054-270-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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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경상북도 · 포항시 · 관광지
포항 달전재사와 하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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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 2025.11 기준- 지정일
- 2012.10.22
- 지정 종목
- 시도민속문화유산
- 유산 소개
- 원래는 승려들이 거주하였다고 전하는 건물이지만 현재는 조선 전기 문신인 이언적(1491∼1553) 선생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한 재실로 쓰고 있다. 그는 24세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정랑, 밀양부사를 거쳐 중종 25년(1530) 사간이 되었다. 그러나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며 벼슬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김안로가 물러난 뒤 홍문관교리, 직제학이 되었고 전주부윤으로 재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그의 송덕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 뒤 명종 2년(1547) 양재역 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저술을 남기며 생을 마쳤다. 그는 조광조·김굉필·정여창과 함께 동방 4현 중 한 분으로 손꼽히며 조선초 성리학의 성격과 방향을 정립한 선구자이다. 건물은 조선 태종 2년(1402)에 세운 건물이라고 하나 근거가 될만한 자료는 없다. 앞면 6칸·옆면 6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전체적으로 ㅁ자형 구조로 건물 뒤쪽에 누각 형태의 난간이 달린 마루가 있고, 좌우 측면에는 좁은 출입문을 두어 다른 재실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 수량
- 1동
- 영업시간
- 사전 협의 후 관람 가능
- 주차
- 가능
- 전화
- 포항시 문화예술과 054-270-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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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달전재사와 하학재 공식 관광정보
달전재사는 조선 중기 문신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재사(묘소나 사묘 옆에 지은 집)이다. 1402년 경에 창건한 건물이라고 구전될 뿐 확실한 근거자료는 없다. 이언적은 1514년 문과에 급제한 인물로 1530년 사간원 사간에 임명되었는데, 김안로의 재등용을 반대하다 관직에서 쫓겨나 귀향하였다. 1547년 을사사화의 여파인 양재역벽서 사건이 일어나 사람들이 다시 축출될 때 그도 연루되어 강제로 유배되었다. 이 재사는 ‘ㅁ’자형 팔작 기와지붕으로 정면 6칸, 측면 6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배치 형태가 다른 재사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배치 수법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학재는 포항시 남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재실(제사를 위한 공간)이다. 조선 중종 때 월성군에 봉해진 우재 손중돈의 묘 재사이다. 손중돈은 양동 마을 입향조인 손소의 둘째 아들로 1489년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길에 올랐으나, 김해도부사 때 간언하다 파직되었으나 중종 즉위 후 상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로도 여러 벼슬을 하며 지내다가 한성에서 별세하였다. 하학재는 후손인 손종하가 1663년 건립하였고 1873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재사는 깬 돌로 쌓은 2중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평면 구성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일자형 집이며 우물마루를 깐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이 있다. 재사 내의 건물로는 하학재 이외에 제수청, 주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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